인터넷전문은행 창업기: 카카오뱅크
일자 | 내용 |
2015년 6월 |
인터넷전문은행 도입방안 발표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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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0월 | 인터넷전문은행 예비인가 접수 |
2015년 11월 | 인터넷전문은행 예비인가 완료 (한국카카오은행, 케이뱅크은행 선정) |
2016년 1월 | 한국카카오 준비법인 설립 |
2017년 4월 | 한국카카오은행 본인가 |
2017년 7월 | 카카오뱅크 영업 개시 |
은행을 창업한다는 것은 어떤 것이고,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까요?
저는 2016년 11월 카카오뱅크의 예비인가때 입사해 2020년 8월까지 전략파트에서 제휴, 신사업 담당 실무자로 일했습니다. 이 기간 경험한 "은행은 어떻게 새롭게 생겨나는가?"에 대한 기록을 공유해보고자 합니다.
신규 은행 인가가 상시 진행되는 새로운 시대에 제 소소한 기록이 혁신을 시작하려는 분들에게 작은 참고가 되면 좋겠습니다.
준비법인 설립 후 2016년 3월 판교 H스퀘어 S동에 사무실이 꾸려졌고, 한투 출신과 카카오 출신, KB 출신 직원들이 모여 서비스 아이디어에 대해 논의를 시작했습니다. 어떤 사업을 할지 구체적으로 정하지 않았지만, 코어뱅킹 등 은행 시스템은 사업 내용에 따라서 크게 달라질건 없기 때문에 동시에 시스템 구축을 위한 RFP 발송을 시작으로 은행 설립 작업이 시작됐습니다.
카카오에서 넘어온 엔지니어분들은 100% 자체 개발을 하고 싶어했습니다. 그러나 코어뱅킹을 만든다는건 차원이 다른 얘기였습니다.
은행 시스템에 대해 간단히 소개하자면, 고객이 은행 앱으로 거래를 요청하면 이 요청을 채널계가 받아 중계한 후, 거래 원장인 계정계(코어뱅킹)에 전달합니다. 굳이 중간에 브릿지를 두는 이유는 코어뱅킹은 거래 기록 원본이 보관되므로 절대 완전 무결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카카오뱅크는 이때 x86, Linux, Java 기반으로 개발된 LG CNS의 전북은행 모델을 채택했습니다. 이미 검증된 모델을 빠르게 도입해야 했고, 고객 서비스의 핵심은 계정계보다는 채널계였기 때문입니다. 반면 케이뱅크는 유닉스를 택했고 몇년 뒤 리눅스로 계정계를 전환하게 됩니다.
2016년 3월, 코어뱅킹 시스템의 개발 착수가 시작되고 카카오뱅크 사람들은 아이디어를 모으기 시작합니다. 포스트잇에 적어 가지치기를 해나갔습니다.
이때 예비인가 계획서상 하기로 했던 많은 아이디어들이 탈락했어요. 대표적인것이 '카카오뱅크 유니버셜 포인트'인데, 고객이 원하는 경우 이자대신 주주사의 혜택으로 더 돌려준다는 언뜻 듣기 좋은 아이디어였는데, "그것이 진짜 고객에게 이로운 혜택일까? 아니면 듣기좋은 마케팅 기믹일까?" 라는 근원적 질문을 다같이 하게 됐습니다.
그런 과정에서 모두가 도달해간 결론은, 새로운 은행은 고객의 시간을 아껴주고, 저렴하고 빠르게 돈을 조달할 수 있도록 돕고, 쉽고 재밌게 저축하는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라고 다들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 본질에서 상품과 서비스 기획이 출발했습니다.
한편 증권업 중심의 경험을 가진 한국투자증권 출신, 모바일 경험 중심의 카카오 출신들은 (저 포함) 솔직히 은행/카드업에 대해 정말 문외한이었기에, KB 출신 뱅커분들이 은행업과 카드업에 대해 강의를 해주며 모두 배워나갔습니다.
한편, 당시 누구도 신설 은행의 성공을 장담할 수 없었기에 KB에서는 파견 인력에 대해 4년 뒤 복귀할 수 있는 옵션을 제공했지만, 아무도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 심지어 제 보스였던 David(이수영 전략파트장)도 KB에서 날라다니시던 엘리트였는데, KB 입장에서는 속이 크게 쓰렸을 것 같습니다.
2016년 당시 기존 시중은행의 인터넷 및 모바일 뱅킹 서비스는 솔직히 크게 나쁘진 않았습니다. 그래서 차별화가 필요했습니다. 후발주자로써 모든것을 원점에서 재검토했습니다.
당시 카카오뱅크에서 격렬했던 내부 논쟁은 "PC 기반의 인터넷 뱅킹도 할 것이냐, 앱만 할 것이냐" 였습니다. 요즘에서야 인터넷 뱅킹을 많이 안쓰지만, 2016년 당시만 해도 개인 고객 기준 인터넷 뱅킹 100:모바일 뱅킹 70 비중으로 인터넷 뱅킹을 더 많이 사용했습니다.
그런데 단순하게 생각해보면, 은행이 인터넷 뱅킹을 제공해야 하는건 너무나도 당연했던거라 생각지도 못했던 신선한 포인트였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어차피 시스템 구축하는데 수백억을 쓰는데, 그거 할 때 겸사겸사 외주 업체 통해 인터넷뱅킹 사이트를 만드는건 20억 정도면 할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이 이슈를 놓고 금융권 출신과 비금융권 출신 직원들이 첨예하게 맞붙었습니다.
카카오 출신 Daniel(윤호영 대표)과 한투 출신 Yan(이용우 전 공동대표)은 웬만한 건에선 서로의 전문성을 존중하며 부드럽게 의사결정을 하시곤 했으나, 이 주제에 있어선 첨예하게 대립했습니다. 치열한 토론 끝에 모바일 앱만 하는 것으로 했습니다. 단일 채널이 된 만큼 모든 역량을 결집해 모바일 뱅킹을 백지에서 다시 그려나갔습니다. 이때 결정적인 3가지 요소를 정하게 됩니다.
1) 이체시 통장비밀번호 입력 이슈: 인터넷 뱅킹이든 모바일 뱅킹이든 너무도 당연한 절차였습니다. 근데 이게 왜 당연한건지, 왜 그래야하는지에 대해선 아무도 설명하지 못했습니다. 은행법, 감독규정집 그 어디를 뒤져봐도 이체시 통장 비밀번호 확인하라는 내용은 없었습니다. 기존 은행의 관행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체 씬에서 통장 비밀번호 입력 단계를 제거했습니다.
2) 비대면 실명 확인시 화상통화 대신 1원 인증으로 유도: 대면 영업점이 없기 때문에 신규 계좌 개설시 비대면 본인 확인을 해야하는데, 화상통화 방식을 택하는 경우 기존에 은행 계좌가 없거나, 인터넷/모바일뱅킹을 잘 사용하지 못하는 고객도 유치할 수 있었습니다. 비즈니스적으로 이득인 결정같지만, 고객 입장에서는 직원과의 화상전화를 장시간 기다려야 해서 서비스 지연이 발생할 것이 분명했습니다. 해서 기존 은행 계좌를 이용한 역이체 방식(기존 보유한 은행 계좌에 1원을 입금하고 적요값으로 인증하는 방법)을 택했고, 매우 성공적인 선택이었습니다.
3) 100% 네이티브 코드로 화면 구현: 인터넷 업계에서는 네이티브로 화면을 구현하는 것이 너무 당연하지만, 당시만 해도 은행앱들의 상당수는 개발 편의성을 위해 조립식 프레임워크를 통해 화면을 구현하여, 터치시 버벅이거나 화면이 부드럽게 넘어가지 않는 사용자 경험을 제공하고 있었습니다. 카카오뱅크는 100% 네이티브 코드로 구현하여 화면 트랜지션이나 터치가 버벅이지 않고 매끄러지듯 넘어가는 당연한 느낌을 주기로했어요. 너무 당연하지만, 당시만해도 당연하지 않았습니다.
UX 차별화는 카카오 출신들이 주도했고, 한투와 KB출신 직원들은 금융 상품의 차별화에 주도하며 서로의 전문성을 발휘했습니다.
"카카오가 전국민에게 300만원씩 뿌린다더라"
예비인가 사업계획이 은행권에 퍼지면서 뱅커들 사이에서 "카카오가 은행을 잘못 해석하고 있다", "고금리 카드론 하려는거 아니냐" 라는 얘기들이 돌았습니다. 그러나 카카오뱅크의 비상금대출에는 목적이 있었습니다. 기본적으로 주주사인 서울보증보험의 보증서 담보대출이므로 재무적 측면에서 카카오뱅크에 영향을 주지는 않았지만, 신설 은행으로써 소액으로 자체 CSS 경험을 쌓을 수 있었습니다. 서울보증보험과는 최소한의 컷오프(심사) 기준을 정했고, 전국민의 거의 90%가 받을 수 있을 정도로 커버리지를 넓혔습니다.
현재도 그렇고 2017년 당시도 그랬지만, 현금서비스 및 카드론을 이용하는 고객들을 1금융권으로 데려온 선한 상품이었고, 카카오뱅크에게도 자체적인 CSS 경험 근육을 쌓게 해준 상품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고객에게 좋은 상품을 제공하는게 진짜 혁신 아닐까요?
예비인가는 세부 규정, 지침보다는 거시적인 계획과 혁신성을 담았다면, 본인가는 가안으로 제시했었던 내용들을 확정하고 구체화하는 절차였어요.
CPC(Central Point of Contact)라고 들어보셨나요? 금융당국에 보고하는 전자적인 시스템을 뜻하는데, 시중은행은 매일 중요 지표들을 보고해야할 의무가 있어요. 생소한 업무 절차와 과정들에 대한 이해, 은행계정 기준 300여개 이상에 달하는 업무보고서 정의, 업무별 제규정(직제규정, 내부통제 및 준법감시체계 규정, 이사회 및 지배구조, 소비자보호체계 등), 재무계획, 인력 및 물적 시설 계획, 리스크관리방안 등 예비인가 이상의 준비가 필요했습니다.
그렇게 2015년 11월 예비인가 이후 시스템 개발 및 본인가 준비를 마치고, 2017년 1월 본인가를 신청하게 되었습니다.
본인가 신청 후 3개월간의 심사를 거친 뒤 2017년 4월 본인가를 획득하였고, 주주사 임직원들을 대상으로 3개월간의 CBT를 진행했습니다. 반응이 나쁘지 않았습니다. 남은 기간 마케팅 전략을 세우고 있었고, 어떻게 모객을 할지 이베이코리아 등 주주사와 협의를 시작했습니다.
그때쯤 케이뱅크가 영업을 시작했고 한달동안 30만명 정도의 가입자를 모으며 나름 선방하고 있었습니다. 지나가던 Daniel이 "우린 얼마나 가입할 것 같아?"라고 물으시길래, "음... 그래도 올해안에 200만명은 모을 수 있지 않을까요?" 라고 답했던 기억이 납니다.
당시 세계적으로 봤을 때 대부분의 인터넷전문은행들은 제대로 시장에 안착하지 못했고, 유의미한 성과를 내는 경우는 1) 유통/판매 채널을 가진 오프라인 접점 기반 인터넷 은행: 영업익의 90%를 ATM 수수료 기반의 비이자 수익으로 창출하는 일본 세븐뱅크(세븐일레븐 계열의 일본 1위 인터넷은행), BMW 판매와 연계한 여신 업무를 주로 취급하는 독일 BMW Bank, 2) 이민자가 많아 기존 은행 접근성이 떨어지는 고객군을 타겟한 유럽계 은행, 3) 웨이신(WeChat), 알리페이 등 강력한 고객 기반을 확보한 플랫폼의 은행(Webank, Mybank 등) 정도 였습니다.
카카오뱅크의 경우는 고객 기반을 가진 3에 해당하긴 했지만, 2016년의 카카오톡은 더더욱 메시징앱이었습니다. 하나의 슈퍼앱에서 모든걸 해결하는 성향을 가진 고객군(예를 들어 동남아 Grab, 중국 WeChat)과, 한국인의 앱 사용 형태의 특성(=메시징이면 카톡, 쇼핑이면 쿠팡, 검색이면 네이버 등 용도에 맞게 쪼개쓰는)을 조금 다르기에 마냥 낙관적이진 않았습니다. 한편, 지급결제와 예대마진을 주요 수입원으로 하는 영국의 Monzo, Atom bank 등은 계속된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출범을 앞두고 일본의 성공 사례를 고려해 롯데그룹과 MOU를 맺었고, 저는 한동안 중구 순화동의 롯데 사무실로 파견을 나가 롯데 유통망에서 카카오뱅크 계좌로 쉽게 결제할 수 있는 서비스를 구현해내는데 집중했습니다.
이제와 돌이켜 생각해보니, 한국인의 삶과 앱 사용 형태의 특성을 다시금 드릴 다운해 생각해본다면, 비이자수익도 좋지만 그건 사이드 메뉴인 것이고, 메인 디쉬는 은행의 본질적 가치인 예대마진, 즉, 얼마나 좋은 대출 상품을 제공하는지, 얼마나 좋은 예금 상품을 제공해 고객에게 근원적인 은행에 대한 필요 수요와 Unmet Needs 등을 충족하는지가 더더욱 중요하지 않았냐는 생각이 들게 됩니다. 특히 현금 결제가 중심인 일본인의 삶과 한국인의 삶의 형태는 좀 달랐으니까, 벤치마킹도 좋지만 우리 스스로의 삶을 들여다본다면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는 분들은 차별화된 가치를 명확히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아무리 카카오 이름을 달고 있다고 해도, 카카오톡과 연동된 카카오페이와 달리 카카오뱅크는 독립 앱이어서 고객 획득하는데 만만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었습니다. 전 직장인 토스에서 유저 획득과 유지를 위해 고군분투했던 경험을 가지고 있어서 더 현실적인 시각으로 바라봤던 것도 같습니다.
카카오와는 엄연히 독립된 법인이기에 공정거래 원칙상 타사와 동일한 단가로 카카오톡 이모티콘을 구매해야 했고, 체크카드에 카카오프렌즈 캐릭터를 쓰기 위해서도 같은 비용을 지불했습니다. 개인적 생각으로는 체크카드의 카카오프렌즈 디자인은 확실히 후킹이 된다고 생각했지만, 이모티콘에 대해서는 전 정말 회의적이었습니다.
"과연 이모티콘 받자고 신분증 촬영하는 수고를 하면서 계좌를 개설할까?"
"차라리 카카오에 지불하는 개당 2천원을 고객에게 주는게 계좌 개설 유도에 더 나은 방법이 아닐까?"
라는 나름의 과학적인 생각을 했는데, 실제로는 계좌 개설 고객들이 한정판 신상 이모티콘을 속속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이슈가 되기 시작했고, 굳이 계좌 개설의 가치를 돈으로 설명하지 않아도 나도 써보고싶은 욕구를 자극하면서, 카카오톡으로 대화를 나누는 아주 많은 유저를 유입하는데 큰 반향과 효과를 가져왔습니다. 섹시한 논리가 필요한게 아니라, 결국 고객과 시장의 반응이 전부임을 다시 한번 깨닫는 순간이었습니다.
2017년 7월 14일 대외비가 풀리며 카카오뱅크 프렌즈 체크카드를 주변에 알릴 수 있었고, 엄청난 확산과 반향을 보며 성공에 대해 직감하게 됩니다. 그렇게 7월 27일 오전 7시 카카오뱅크는 첫 영업을 시작했습니다.
연말까지 달성할것이라 예상했던 200만명은 가입자 기준으로는 불과 5일만에, 계좌 개설자 기준으로 불과 13일만에 달성하게 됩니다. 주주사들과 협의했던 마케팅 플랜들도 무의미해져서 다 보류했습니다. 고객이 너무 몰려 계좌 개설과 대출이 원활하지 않고, NICE 등 연계된 대외기관까지 장애가 발생해 다른 은행 앱도 먹통이 되는 일 마저 발생했습니다.
실제 연말까지는 계좌개설 고객 수 500만명, 수신 규모 5조1900억원, 여신 규모 4조7600억을 달성해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한 인터넷은행이 되었습니다.
앞서 출범한 케이뱅크는 카카오뱅크보다 3년 뒤인 2021년 초에 이르러서야 500만 고객을 달성하게 됩니다.
추후 인터넷전문은행 시장 진입을 노리신다면, 유무형의 어떠한 형태로라도 고객 기반을 확보하고 있어야 비교적 용이하게 모객을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2018년 초 기준 카카오뱅크는 급격한 성장에 네 차례 증자를 진행했고 총 납입자본이 1조 3천억에 이르렀습니다. 출시 일주일만에 예상치 못한 대출로 긴급하게 증자도 해야했습니다. 일주일 안에 수백억을 쏴야한다는 통보(...)에도, 9개 기존 주주가 실권없이 계속 참여했습니다. 의사결정 과정이 복잡할 것 같은 정부(우정사업본부)도 신속하게 증자에 참여했습니다.
반면 케이뱅크는 주주사가 총 20개에 달해 의사결정에 큰 지장을 겪었습니다. 또한 KT가 대주주가 되지 못하면서 카카오뱅크와 유사한 시기에 증자를 여러차례 시도했지만 결국 실패하고 거의 1년간 대출이 중단되는 등 개점휴업을 겪기도 했습니다. 결국 BC카드가 KT를 대신해 최대주주에 오르면서 다시 영업을 재개했는데, 이미 카카오뱅크와의 경쟁은 끝난 상황이었습니다.
추후 인터넷전문은행 시장 진입을 노리는 컨소시엄에서는 주주 구성과 증자 여력에 대해 참고해야할 부분으로 보입니다. 생각보다 견고한 대출 수요로 증자 시점이 아주 빨리 다가옵니다. 수 년간 계속되는 증자를 감당할 수 있는, 거의 커밋까지 된 수준의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야 합니다. 케이뱅크 등의 사례를 볼 때 자본 조달의 안정성이 인가 여부의 반절 이상을 결정한다고 봅니다.
카카오뱅크의 경우 은산분리 특례법 개정 전까지 한국투자금융지주가 58%까지의 지분율에 의한 증자를 계속 감내해나가며 우군 역할을 해주어서 안정적인 경영이 가능했습니다. 항상 최악의 케이스도 생각하시길 바랍니다.
한편, SI(전략적 투자자) 주주라고 해서 협업이 저절로 이루어지지는 않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협업할지 생각해야 합니다. 카카오뱅크의 경우에도 넷마블, 우정사업본부(우체국), 예스24 등과는 아무런 협업을 이루지 못한 채 이별했습니다.
카카오뱅크 오픈 후 45일만에 100만건이 넘는 문의가 고객센터로 인입되었습니다. 제2 고객센터 오픈 전까지 고객서비스파트는 물론 카카오뱅크 전직원이 고객 문의 응대에 매달렸으나 한계에 다다르고 있었습니다.
고객서비스파트는 이러한 VOC 처리는 물론, 고객 문의에 대한 응답의 즉시성 해결을 위해 챗봇을 도입하기로 합니다. 마침 카카오가 '카카오 아이 오픈빌더' 라는 이름으로 카카오톡과 통합된 챗봇을 제작하고 있었고, 저는 전략파트 담당자로써 카카오와의 딜을 맡았습니다. 딜이 필요했던 이유는 카카오뱅크의 VOC 수량이 한국에서 비교대상이 없을 정도로 압도적으로 많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제게 주어진 숙제의 크기가 만만치 않았습니다. 상대방 입장에서 할 이유가 전혀 없는 네고였거든요. 많은 딜을 경험해보신 분들은 이런 종류의 일이 얼마나 막연하게 느껴지는지 잘 아실 것 같습니다. 어떤 내용인지는 기술하기 어렵지만, 할 수 밖에 없기에 전방위적으로 밀어붙였고, 카카오 본체의 사업 전략까지 바꾸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어떠한 딜이 반드시 필요하시다면, 상대가 예상치 못한 일까지 하면서 될 수 밖에 없게 만드셨으면 합니다.
고객서비스파트의 챗봇팀에서는 답변으로 제공되는 콘텐츠를 계속 최적화하며 단순한 다이얼로그 형태를 넘어 자연어 대화의 수준으로 품질을 높여왔고, AI 상담 챗봇의 이용 비중을 60%까지 높여 24시간 365일 고객 문제 해결의 즉시성을 높이고, 확보된 가용 자원으로 더 품질 높은 상담을 제공할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내부 경험은 상담 챗봇을 넘어 카카오뱅크 제품 자체에도 대화형 인터페이스를 도입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대면 채널이 없는 인터넷전문은행의 특성상 대출 프로세스 단절 등 고객의 심리적 불안감이 존재하기에, HCI(Human Computer Interaction)적 접근이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무리 카카오 브랜드를 달았다고 해도, 상품의 경쟁력이 없거나 서비스가 쓸만하지 않았다면 분명 소비자에게 외면받았을 것입니다.
경험해본 바, 은행 사업은 건전성 관리를 효과적으로 한다면 분명 아주 좋은 사업입니다만, 새로운 은행을 준비하시는 분들께서는 재무적 목표 달성에만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새로운 은행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진짜 비전이 무엇인지, 궁극적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것을 거듭 생각해보신다면 분명 사회적 기여와 좋은 성과를 동시에 이뤄내실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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